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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월 03일 - 조선어연구회 창립 본문

12월

12월 03일 - 조선어연구회 창립

mace 2017. 12. 4. 17:16

12월 3일은 조선어연구회가 창립된 날이다.




개요

한글 학회(—學會)는 한글과 한국어의 연구를 위해 이루어진 학술 단체이다. 1908년 8월 31일에 김정진을 회장으로 하여 창립한 ‘국어연구학회’를 모체로 1921년 12월 3일 창립하였다.


한글 학회는 1926년에 한글날을, 1933년에 한글맞춤법통일안을 제정하고, 한글을 보급하고자 노력했다. 해방 후, 학회는 한글 전용을 주장해 국한문혼용을 한글 전용으로 쓰는 것을 장려했다.


한글 학회의 처음 명칭은 조선어연구회(朝鮮語硏究會)로서 국문연구소(1907년 설치)를 계승하여 만들어졌다. 당시 회원은 장지영·김윤경·최현배·권덕규 등 15~16명이었다. 이들은 동호인들을 규합한 후 학회 활동으로 연구발표회를 가지는 한편, 1927년 2월 8일에는 기관지 《한글》을 발간했다.


1931년에는 학회의 이름을 조선어학회(朝鮮語學會)로 고쳤고, 1933년에는 한글맞춤법통일안·외래어표기법을 제정하고 우리말사전을 편찬했다. 1942년부터 회원들이 여러 차례 독립운동죄로 검거되었는데, 이것이 바로 조선어학회사건이다. 8·15 광복과 더불어 부활되어 지금의 이름으로 개칭되었다.

@위키피디아

[한글학회 : https://www.hangeul.or.kr ]


朝鮮語硏究會(조선어연구회)그意義(의의)가重大(중대)

동아일보 | 1921.12.04 기사(사설)




한글학회의 발자취

1907. 07. 01.
~ 09. 03.
주 시경 선생이 제1회 "하기 국어 강습소"를 운영함.
1908. 07. 07.
~ 08. 31.
제2회 "하기 국어 강습소" 운영.
1908. 08. 31."국어연구학회" 창립. 회장: 김 정진
1909. 11. 07.
~ 1910. 06. 30.
국어연구학회에서 "국어강습소" 제1회(중등과)를 운영함(강사: 주 시경, 졸업생 20명).
1910. 10.     
~ 1911. 06. 27.
제2회 국어강습소를 운영함(졸업생 51명).
1911. 09. 03.학회 이름을 "배달말글몯음(朝鮮言文會)"으로 바꾸고, "국어강습소"도 "조선어강습원"으로 이름을 바꾸고 조직을 넓힘.
09. 17.
~ 1912. 03.
조선어강습원 제1회 중등과를 운영함(수업생 126명).
1912. 04. 21.
~ 1913. 03. 02.
조선어강습원 제1회 고등과(졸업생 33명)와 제2회 중등과(수업생 38명)를 운영함.
03. 23.학회 이름을 "한글모"로 바꿈. 회장: 주 시경.
1913. 04. 22.
~ 1914. 03. 01.
조선어강습원 제2회 고등과(졸업생 21명), 제3회 중등과(수업생 39명), 제1회 초등과(진급생 8명)를 운영함.
04.     조선어강습원을 "한글배곧"으로 이름을 바꿈.
07. 27.주 시경 선생 돌아가심.
1915. 03. 07.한글배곧 제3회 고등과 졸업식(졸업생 23명)과 제4회 중등과 수업식(수업생 39명)을 가짐.
1916. 03. 20.한글배곧 제4회 고등과 졸업식(졸업생 21명)과 제5회 중등과 수업식(수업생 7명)을 가짐.
04. 30.임시총회를 열어 학회 조직을 정비함. 회장: 남 형우.
1917. 03. 11.한글배곧 제5회 고등과 졸업식(졸업생 14명)과 제6회 중등과 수업식(수업생 17명)을 가짐.
1917. 04.   
~ 1919.        
학회 활동이 침체됨.
1919. 가을."조선어연구회"로 다시 일어섬.
1921. 11. 26.조선어연구회의 조직 확대를 위한 발기회를 가짐.
12. 03.조선어연구회의 확대·강화를 위한 총회를 열어 임 경재, 장 지영, 최 두선을 간사로 선출함. 간사장: 임 경재. 사무실: 휘문고등보통학교.

 1924. 02. 01.

(음력 1923. 12. 27.)

휘문고등보통학교에서 훈민정음 창제 8번째 회갑(480돌) 기념회를 가짐.

 1926. 11. 04.

(음력 1926. 09. 29.)

음력으로 9월 29일을 ‘훈민정음 반포 기념일’(『세종 실록』 권 113의 "세종 28년 9월에 훈민정음이 이루어지다"란 기록에 따름)로 "가갸날"로 정하고, 신민사와 함께 각계의 인사를 초청하여 경성 식도원에서 첫 기념 축하회를 엶.
12. 04.정기총회 열어 임원을 새로 뽑음. 대표 간사: 이 병기, 간사: 신 명균·정 열모.
1927. 01. 03.~06.
05. 23.~28.
06. 13.~18.
조선어 강습회를 엶.
02. 08.동인지 『한글』 첫 호를 펴냄(4×6판, 세로짜기), 제2호부터는 4×6배판으로 바꿈.

 10. 24.

(음력 09. 29.)

한글사와 함께 경성 명월관 지점에서 가갸날 기념 축하회를 엶.
11. 09.한글사와 함께 가갸날 기념 강연회를 엶.
1928. 04.     경성부 수표동 42번지의 조선교육협회 회관으로 사무실(수표동 회관)을 옮김.

 11. 11.

(음력 09. 29.)

가갸날을 "한글날"로 이름을 바꾸어 기념 축하회를 엶.
10. 12.동인지 『한글』 제9호로 폐간함.
1929. 10. 31.조선교육협회 회관 강당에서 483돌 한글날 기념 축하회를 열고, 각계 인사 108명이 발기하여 "조선어사전편찬회"를 조직함.

 

 

함께보기

 - 국가지정기록물 : 제4호 조선말 큰사전 편찬 원고  

 - 한글학회 : 조선말 큰사전(1957.10.09) 

 - 국가기록원 : 한글이 걸어온 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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